원주민 떠난 만리동에
자본이 든다

촬영·편집 노성윤
1

원주민 떠난 만리동에 자본이 든다

서울로 7017 개장으로 젠트리피케이션 가속

김동현 기자 esc@sisajournal-e.com 김문경 기자 alkim@sisajournal-e.com

서울 중구 소재 만리동도 어김없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 재활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판 하이라인파크’라는 불리는 서울로 7017이 개장하기 전부터 팬시한 가게가 하나씩 들어서더니 집값과 임차료가 들썩이고 있다. 이 탓에 원주민은 주거비나 임차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만리동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난 빈 자리는 상가개발 경험과 자본을 두루 갖춘 외부인이 차지하고 들어섰다.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만리동의 변화는 5월20일 서울로 7017 개장을 기점으로 가팔라지고 있다. 낙후한 도심이 고급 상가내지 주거 지역으로 바뀔 조짐이 보이자 자본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유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원주민 유출 속도도 빠르다. 도심재생사업이 으례 그렇듯 만리동 원주민에 대한 대책은 이번에도 없었다.

서울로와 만리동 전경 / 사진 강유진·노성윤

만리재로에는 사람이 떠났거나 곧 떠날 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아무개씨(63)는 20년간 같은 자리에서 봉제업에 종사하고 있다. 정씨는 건물주로부터 ‘자리를 비워달라’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정씨는 “6월쯤 이사갈 예정인데 어디로 갈진 못 정했어. 평생 이 일만 했는데, 다른 일은 배우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 가서도 이거 하겠지 뭐”라고 말했다. 정씨 가게 바로 아래에서 공업사를 운영하는 김선복(66)씨는 “버텨봤자 건물주가 소송 걸어올텐데 우리같은 사람은 소송을 준비할 시간도 돈도 없다” 말했다.

정종구 서부정카독크 사장 인터뷰 / 촬영·편집 강유진

서울시는 침체한 상권을 살리고 낙후한 서울역 서부지역 일대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로 7017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다. 서울로 7017을 통해 만리동, 중림동 등지로 사람을 끌어오고 지역 상권을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도시재생 계획에는 임차인 보호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탓에 상가 임차인은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만리동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울역일대 종합발전기획단 권완택 재생사업반장은 “시가 임대차 관계에 개입할 수 없다”며 “개인이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라고 말했다.

현재 브라우저는 iframe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만리동 주민들의 모습 / 사진 강유진·노성윤

서울로 7017에는 카페 6개 등 편의시설 24개가 들어설 예정이다. 권완택 반장은 “편의시설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서울시가 가져간다”고 밝혔다. 만리재로 앞에도 일부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권 반장은 “서울역 일대 상권이 자연스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운 재생사업단 사업계획팀장은 “서울로 7017은 단절된 지역을 연결해 낙후지역을 활성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 사업계획 단계에서 5개 건물 소유주인 재단들과 서울역고가~주변빌딩 연결통로 설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진행단계에서 2개 재단은 포기했고 연세재단과 협의중이다. 서울역고가와 각각 대우재단 빌딩, 호텔마누를 연결하는 다리가 가설됐다. 메트로와 서울스퀘어가 빌딩과 고가를 연결하는 사업에 참여할 뜻을 밝혀 협의하고 있다. 대우재단, 호텔마누, 메트로, 서울스퀘어, 연세재단 모두 만리재로에서 약 580m 밖에 있다.

길이 건물과 이어지고 동네가 분주해졌지만 원주민은 하나둘씩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만리동에서 45년간 산 이호순(78)씨는 6, 7월 중 집을 비운다. 한때 사촌동생이 내준 집에서 9세대가 살았다. 사촌동생이 3월 집을 팔면서 이씨는 경기도 파주로 이사한다. 집터에는 호텔이 들어선다. 이씨는 서울로 7017 개장에 대해 “뭐가 좋아. 사람들 다 떠났는데. 이 근처 집 다 팔렸어. 다리에 뭐 생긴다니까 돈 욕심에 다 팔았지”라고 말했다. 집에는 지금 이씨와 9살 반려견 아리만 남았다.

만리동 주민들 인터뷰 / 촬영·편집 강유진

만리동에서 6년간 산 정천권(64)씨는 6월에 화곡동으로 이사한다. 정씨가 사는 주택단지는 30년이 넘었지만 땅값은 2배로 뛰었다. 정씨 집 전세값은 5000만원 올랐다. 정씨 직장은 동대문 인근이다. 그는 “화곡동으로 가면 지금보다 교통도 불편하고 출퇴근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 서민 처지에서 계속 밀려나는 듯해 서글픈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현재 브라우저는 iframe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만리동은 워낙 낙후된 동네라 새 상권이 들어와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면서도 “원주민과 기존 상권을 보호할 방안은 서울시가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인터뷰 / 촬영·편집 강유진

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계획 수립 당시) 영세하더라도 특색있는 가게는 살리는 등 주변부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어야 했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선 서울시가 공공부지를 미리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만리동 내 부지를 쌀 때 매입해 청년 사업공간, 노인 복지시설, 주차장 등 공공시설을 개발하는 방안을 개발 전에 강구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촬영 · 편집 노성윤